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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을 맞아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기념관 여기저기를 다니며 가슴이 뛰는 것을 경험하였고, 나도 한국인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네요.  그리고 나도 애국자의 피가 조금은 흐르는 구나 하는 생각을하다가 한국 교육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던 유관순 열사 기념관 방문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기념관 쪽에서 바라본 유관순 열사 동상


  조선시대의 교육 vs 현대의 교육

조선시대도 교육은 가진 자들만의 것이었습니다. 상놈은 감히 책을 가질 수도 없었고, 글을 배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조선이 닫혔던 문호를 개방하면서 교육의 범위가 확대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양반, 상놈의 교육 수준차가 점차 사라져가던 이때, 한 소녀가 이화 학당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나라사랑과 조국 독립의 필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고등 교육이 가능한 자들은 상급학교에 보내야죠!!!


교육의 범위가 확대되어가긴 했으나 오늘 날과 같은 통신의 발달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당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영문도 모르고 일본어를 쓰고, 일본식 이름을 쓰고, 일본 사람들의 핍박을 받았을 것입니다.  TV도 라디오도 흔치 않았기에 '왜 우리가 이래야 하지?' 하면서도 아무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독립된 사실도 몰랐다고 합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성장의 정도는 양반이라고 해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상놈이라고 해서 성장을 더디 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발전의 정도가 다르지요. 요컨데 교육의 평등한 제공으로 정말로 공부해야하는 사람을 가려내야하는데, 양반이면 머리가 나쁘고 공부에 재능이 없어도 무조건 교육을 받고, 상놈이면 (머리가 좋던 나쁘던)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데 아쉬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요즘도 교육은 가진 자들의 것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권력과 부를 가졌다고 해서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요, 권력과 부가 없다고 미련한 것이 아니기에 교육 평등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등한 기회 속에서 정말로 지혜로운 자들을 가려내어 고등 교육, 고급 교육을 시켜야 이 나라가 더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영어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권력과 부가 영어 교육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있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유학 등, 제대로된 언어교육 받고, 

99%의 평범한 사람들은 영어 해결을 위해 학교교육에만 믿고 있다가 졸업 후, 어쩔 수 없이 사비를 들여가며 영어를 꾸역꾸역 억지로 익혀가고 있는 형편이어서는 안됩니다. 그것도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답답한 상태로...


권력과 부를 가진 1%에서만 지혜를 찾으면 또다시 타국의 지배를 받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우물안 개구리 처럼 권력을 되물림하고, 사리사욕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의, 나라 전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신과 상관없이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길 만한 인재들을 많이 길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교육 평등이 만들어 낸 유관순 열사

교육평등이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된 시기는 조선 개화기(구한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때로 양반들보다 훨신 지혜롭고, 행동이 기민했던 중인, 천민들도 관직에 오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고 글 읽어보기(클릭))  그들은 교육을 통해 양반들과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양반들 입장에서 이것보다 아니꼬운 일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시선을 조금 넓은 데로 돌려본다면,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의 발전을 허락하기가 어렵습니다. 장차 자국의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전을 저해하려는 수단으로 교육을 사용하곤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과 한국입니다. 한국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교육의 절대적인 피해자 입니다. 


한국인들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만든 식민지 교육에는 생각하는 능력이 쏘옥 빠져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술이 좋아서 시키는 것은 척척 해내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탐구하고 만들어 내는 일은 잘 못한다는 것이죠. 


헐리웃에서도 한국인들의 컴퓨터 그래픽기술이 너무 뛰어나서 대부분의 CG기술자들이 한국인이지만, 정작 감독은 한국인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상상은 다른사람이 하고, 구현은 한국인이 하는 것이죠. 상상하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되도록 고안된 일본 식민지 교육이 잘 녹아든 한국식 교육, 일본 놈들의 걸작이라 생각됩니다. - 광복 후에도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이런 기술, 한국인이 가진 이 놀라운 기술들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었다 깨나도 기계는 상상, 생각, 사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한국교육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겨우 기계 수준인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천재들은 미술, 음악, 체육, 문학, 과학 할 것 없이 철학(자신만의 생각하는 방법으로 정의하겠습니다)을 반드시 배웁니다. 아니 지도교수가 반드시 철학을 전공하도록 유도합니다. 기술적인 천재로 그치는 것이아니라, 그 천재적인 기술 속에 자신의 철학을 담아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아쉽게도 이 철학이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빨리배우고, 누구보다도 똑같이 흉내내지만, '왜?' 가 없고, 자신만의 '철학'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왜'도 '철학'도 없으면 우리는 기계보다 뛰어난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철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기술(답)만 가르치는 교육은 바뀌어야 합니다.


특목고 저는 찬성입니다. 그러나 선발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정말로, 적합한 아이를 찾아내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단순히 과외 더 받고, 자소서 더 잘 써서 뽑히는 그런 구조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유관순의 재능을 알아본 샤프여사 처럼 인재를 알아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의 국회의원들 보다 훨씬 나은 안목과 협치를,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누구보다 더 잘 해낼 사람들을 가려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제도 속에선 제 2의 유관순은 그림의 떡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라는 배움의 장에서

역사는 늘 우리를 생각하게하고, 큰 깨우침을 줍니다. 단순히 사건의 발생 년도 외우고, 무슨 일 있었는지 외우라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번 유관순 열사 기념관에서 (혼자 생각이지만) 한국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을 갖게 된 데 참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 어리면 할 수 없다는 시각을 가졌네요, 여자면 할 수 없다는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년 내내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 이것이 바로 바른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우측의 순교자 추모각 부터 방문하였습니다. 

추모각을 올라가는 길에는 조경이 잘 되어 있습니다.


물래 방아도 보이구요.


좌측으로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보입니다.


아쉽게도 추모각은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진은 찍지 못하고 글로 대신합니다. 


이 순교자 추모각은 호서지방 최대의 항일운동인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서 순국한 47분의 넔을 기리고자 위패를 모신 곳이라고 합니다.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턴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3000여명이 참여 하였으며, 일본 경찰의 발포로 19명은 현장에서 즉사 나머지는 옥고 중에 사망, 그리고 부상중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몇년전 전쟁의 위기가 더 심했을 때,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이스라엘의 젊은이 들을 비교한 인터넷 글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전쟁을 앞두고, 이민이나 여행을 통해서라도 한국을 떠나기를 원하고있는데 이스라엘은 전쟁 기미만 보이면 젊은이들이 귀국한다고 하지요. 이게 교육의 효과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괜히 원소기호, 역사적 시점 암기 이런 쓸데 없는데 시간을 빼앗기니 아이들은 점차 짐승처럼 바뀌어 갑니다. 사람이 되게, 생각을 할수 있는 교육을 시켜주세요. 제발!!!


아마 추모각에 위폐가 있으신 분들이 이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 유관순 기념관 내부의 전시물 사진입니다.


추모각을 둘러본 후, 우측에 난 문을 통해 유관순 열사의 추모각으로 이동을 합니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지 못할까 싶어 외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좌측에 추모각의 정문이 보입니다. 


우측에 추모각과 쪽문이 보입니다. 


추모각 내부에서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보았지만, 사진 촬영 금지라는 푯말을 찾을 수 없어, 촬영이 가능한 것을 생각하고 추모각 내부의 설명 판넬을 촬영하였습니다.  추모각 내부에는 유관순열사의 영정과 이 영정을 옮길 때 사용한 가마가 보관되어 있습니다.(촬영 가능 여부에 대해 확신이 없어 영정과 가마는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추모각 좌측 바로 앞에는 방명록이 있습니다. 이 방명록을 펼쳐보면 학생의 글씨인 듯 삐뚤빼뚤한데, 장난으로 써 놓은 방명록이 있더라구요. 이런 곳에서 까지 장난을 치는 모습은 그리 예뻐보이지 않았습니다. 


추모각에서 바라본 추모각 정문의 모습입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 유관순 기념관으로 향합니다.


우리의 이동경로 순국자 추모각>유관순열사 추모각> 유관순열사 기념관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소녀의 위대한 행적을 보관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모습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다 찍은 사진이라 합니다. 얼굴이 붓고, 안스러워 보이지만 눈빛은 살아있습니다. 


징역 3년이란 글자가 가운데 보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재판 기록이라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의 신념을 만들어 준 책 중 하나인 당시의 성경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도 교회를 다니지만,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언어는 살아있다)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한 설명글입니다. 조국의 운명을 개인의 생사보다 소중히 여기신 이 분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발뻗고 살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사가 느껴집니다. 감사도 뒤로한체 뽑아주니 나라걱정은 없이 매일 싸우고 삐지는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의 상황을 알리고, 조국 독립을 위한 운동을 제안할 때 이에 동조해 준 가족들과 천안 시민들의 용기와 나라 사랑이 참 멋있기만합니다. 나는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만 남습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내부에는 이외에도 많은 자료들과 전시물, 영상 상영관도 존재합니다.

기회가된다면 반드시 방문하시어 유관순 열사 및 오늘날의 한국을 있게한 위대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확인하시는 것을권합니다. 그리고 근처 목천면에는 '독립기념관'도 있어서 함께 관람하시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매우 좋은 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병천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5일장이 서는 날이어서 사람이 많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명절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장도 한 100m 정도 밖에는 상인이 없었습니다. 




예전 외할머니 댁 앞의 구멍가게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머리방도 보이구요.


최신 전화기를 파는 전화기 매장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다는 순대국밥집도 있구요.


안되는 게 없는 만능 물건을 파시던 상인도 보입니다.




별거별거 다 파시던 할아버지




100여년전 이곳에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폭발했던 사람들이 외쳤던 함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함성을 만들어낸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대한민국, 영어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제대로된 교육이 시작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당신을 만들어낸 100년 전의 교육의 힘이 이 땅에 되살아나길 기도해봅니다!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고 그냥 끝내지 마시고, 한국교육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부탁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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