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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의 자녀가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부담도 되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데 더 신경쓰이는 것은 그 아이의 얼굴표정이었다. 두 달 전 즈음, 특강으로 그 아이를 처음 대하게 되었다. 특강에는 당연히 과제도, 시험도 없기 때문에 아이는 정말로 신나게 영어 공부를 하다 갔고, 특강을 마치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자

'우리 애가 영어 너무 재미있데요!'라고 하며 학원에 등록하겠노라는 약속을 했다. 


영희(그 아이의 가명)가 등록을 했다. 그런데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 터라 완전 신입반이 아닌 신입 다음 반에 배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표정은 등원을 할 수록 굳어져 갔다. 그동안 동네에서 영어 좀 한다는 말을 듣고 다녔을 아이가 학원에서 보는 단어 시험에 연거푸 통과를 못하니 학원에 올 때마다 스트레스로 가득한 어두운 표정으로 올 수밖에...


지인과 다시 통화를 하였다. 그의 대답은 예상대로 였다.


'단어 외우는게 어렵데.'


난 학원 강사다 오랫동안 중등부에서 꼴지반과 특목반을 오가며 수업했고, 현재는 초등부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학원이란 것, 아이들에게 결코 권하고 싶지 않다. 내 자녀들도 학원에 보낼 맘이 없다. 나도 분명 우리 아이들이 학원에 등록하면 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점수로 아이들을 판단할 것이 뻔한 불량 아빠이기 때문이다. 


우리 영희의 표정을 생각하며 다가 문득, 군시절이 떠올랐다. 요즘은 지루해 하는 아이들을 웃기려고 가끔 하는 이야기지만(욕처럼 들리는 말이 있어서), 어쩌면 공식적으로 영어 잘 하는 사람이 된 첫 번째 사건이기도 하다.


나는 군에서 우여 곡절(?) 끝에 후방 탄약 보급 부대의 운전병으로 배치가 되었다. 우여곡절이란 뜻은 우리나라에서 악명 높은 3사단(백골부대)의 민정 경찰로 차출 되었다가 운전면허 때문에 후방 배치로 갑자기 틀어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지인 중에 군 장성도 없고, 아버지도 그냥 병장 출신에 나도 이렇다할 뛰어난 점(입대후 신체 검사에서 특급을 받았지만) 이라곤 찾을 수 없으니 우여곡절이란 표현을 쓰게 되었다.


탄약 보급부대의 운전병으로 근무하다 한 상병쯤 되었을 때, 수송관님을 선탑자로 태우고 대대로 가고 있었는데 대대에서 한 1km정도 떨어진 곳에 길을 헤메는 미군 트럭 서너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수송관님이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하셔서 차를 세웠다. 

"야 인마, 여자 잖아, 도와줘야지~. 정지!"

"네, 정지 하겠습니다."

겁도 없이 수송관님은 미군(여자 운전병)에게 손짓했다. 

참고로 우리 부대는 미군탄이 다량 보관중이어서 미군의 왕래가 잦았다. 

그래서 차를 세우라고 할 때만해도 속으로 생각하길 

'음, 수송관님이 영어 좀 하시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미군이 당도하자 수송관님은 조금씩 경직되는 모습을 보이더니

"Where is 000asp?' 라고 묻는 질문에 갑자기 '어버버버...'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완전히 시뻘게 지면서 말이지.

돕겠다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I see~ Follow me~"(<-요게 참 욕처럼 들린다)

"Thank you"

이 짧은 두 마디에 잠시 넋을 놓았던 수송관님은 미군이 차량으로 돌아가자 대뜸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뭐 문제가 되는 상관의 폭행, 뭐 이정도는 아니고, 장난 수준의 - 선임에게 맞는 것에 비하면 - 구타(?)였다.


"야, 이 새끼야, 미군한테 욕을 하면 어떻게해?! 어?!"


몸에 상관이나 선임의 터치가 있을 경우 자동으로 튀어 나오는 관등성명과 함께


"상병, OOO, 욕한거 아닙니다!"


를 연발했다.


잠시 후, 미군이 시동을 걸고 기다리자(경적, 빵빵) 우리도 출발을 하고 그들은 우리 차를 따라왔다.

대대에 차를 세우고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수송관님은 중대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왜 미군이 고맙다고 했는지 꼬치꼬치 물었고, 별로 길지도 않은 말을 해명하는데 20분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때린게 미안해서 였는지, 


"야 OOO이~ 이 자식, 영어 잘 하든데~" 하면서 100명 밖에 안 되는 영외 중대에서 여기 저기 다니며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전에 군대 에피소드에는 '영어만 들으면 자는 나'를 묘사 했었지만, 운 좋게 저 날은 원어민님의 말씀을 잘 알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칭찬이 내가 영어 공부를 해내는데 정말로 많은 힘을 주었다.


다시 영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아이들은 얼마든지 영어를 잘 할수 있고, 가능성도 어른들의 몇 십배 이상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실력측정'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바로 주눅들게 된다. '실력측정'은 곧 비교 데이터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 엄마들에게는 옆집 아이들과의 비교 데이터 말이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교회에는 2017년 동갑내기가 6명인데 그 중에 처음으로 태어난 녀석이 요즘 교회에서 아장 아장 한 걸음씩 걸음마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아직 벽집고 걷기도 못하는 친구를 갑자기 두 다리로 서게 하더니 걷게하는 부모를 보았다....

모두가 '다리 휘니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계속 하는 그 아빠...


비교 대상이 생기면, 맘이 급해지고, 급해지면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마음이 상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과연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마음에 상처나 포기하는 법을 일찍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난 학원 강사이다. 그러나 학원에서 아이들의 점수와 서열을 만들어 내는 문화는 철저히 지양하고 싶다. 그리고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으신 어머니라면 반드시 이런 부분을 생각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어 공부에서 필요한 것은 점수가 아닌 칭찬이다. 상병시절에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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