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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2019년 10월 이전)

길- 었던 주말을 보내고

by Spatula 2018.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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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살면서 가장 긴 주말이었던 것만 같다...


지난 금요일(2018년 10월 5일), 평소처럼 일을 마치고 약간의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 어머니 병상을 지키는 것이 어느 덧, 평소가 되어 버렸다 - 아내가 가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며칠 남지 않은 것같아 그냥 내가 가겠다고 했다. 여전히 병상에만 누워계신 어머니, 아예 일어나지 못한 것이 벌써 3주가 넘었다. 오늘은 의식도 없다. 의사가 말한 임종기간을 한 주나 넘겼기에 병원에서는 호스피스 병원을 연결해 주겠다 했다. 병원이 연명치료를 포기한 것 같아 속이 상하면서도 더 편안히 마지막을 보내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 옆 간이 침대에 누웠다.

 

매번 잠을 잘 때마다, 고통에 신음하는 어머니의 소리에 깨어나, 진통제 놔달라고 간호사에게 달려가기가 일수였는데 토요일 아침 8시까지 정말로 아무런 기척 없이 주무셨다. 덕분에 편안히 잘 수 있었지만, 의식이 없으신 탓에 걱정도 되었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경 가래가 너무 심하게 끓는 듯하여 간호사에게 가래를 빼 줄 것을 부탁했다. - 비록 지금은 후회하지만 - 어머니를 위한 것이라 숨이라도 편히 쉬시라고, 시작된 썩션...


의식 없는 어머니가 갑자기 구토를 하셨다. 맥박도 호흡도 떨어지면서 다른 간호사들까지 합세하여 토사물을 빼내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20분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이번 달에만 세 번째, 치료실로 이송 되셨다. 


아산 병원 7층 치료실은 죽기 직전의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누구나 치료실로 옮기면 살아서 나오지 못하고, 임종하는 모습을 이 곳에 들락거린 한 달 동안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러나 치료실 이송을 두 번이나 이겨내신 내 어머니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다. 

다시 병실로 돌아오실 거라는...


치료실 이동 직전, 담당의가 나를 불러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절대로 믿지 못하는 나는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강한 분이신데...'

라고 되내이며,  '오늘 돌아가시면 어쩌지?'라는 나의 의심을 짓누르려 애썼다.


치료실에서 평안해 보이던 것도 잠시, 이내 어머니는 구토를 이어갔다. 간호사를 부르기를 여러 차례, 

담당 간호사가 급하다며, 가족들이 다 모여야 한단다.


간호사의 '가족 호출' 명령 후, 어머니는 이내 안정을 찾으셨기에 간호사의 판단이 잘 못된 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평안히 어머니 옆에서 찬송을 불러드렸다. 그러나 구토가 다시 시작되고, 맥박과 호흡이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한 나머지 누나에게 5분 단위로 어디냐고, 얼마쯤 남았냐고 전화를 했다.

계속 되는 전화에 누나도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도착하셨다.

아가들도 도착했다.


어머니 귀에 간절하게 속삭인다.

'누나 오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도착했다.

맥박이 멈췄다.

호흡이 멈췄다.

엄마 몸에 연결된 기계가 엄마의 상태를 경보와 함께 알린다...


'엄마, 누나 기다려 줘서 고마워...'

라고 귓전에 속삭이고는 다시 맥박이 뛰길, 다시 호흡이 계속되길 간절히 기다리지만,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흐르고, 

얼마나 지났을까, 담당의가 나타났다.

'9시 51분 52초에 사망하셨습니다.'


한 번도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아버지도 소리내어 우셨다. 

아가들도 울었다. 

참다, 참다, 나도 눈물이 터져 버렸다.

아내도, 누나도, 매형도...


마침 목사님이 도착하셨지만, 온 가족들을 배려하셨는지 멀리서 눈시울만 붉히셨다.


10월 6일 9시 51분 52초...

...




장례를 마치고, 3일째인 오늘 용인공원에 다녀왔다. 


어머니 계신 곳,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시편 23편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문득, 어머니의 이름이 쓰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시간을 흘려 보냈던 염습실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의를 입히고, 입관을 마친 후, 상주인 내게 관에 어머님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 이름을 쓰는 것이 다시 볼 수 없다는 의미로 느껴져 - 이미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참아 쓸 수가 없었다. 이름을 쓰고 나면 다시는 못 만날 거란 생각에 

망설이고, 망설였다.

모든 가족들이 눈물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도 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이름을 써도, 그 이름을 불러도, 그 이름을 생각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증서(사망진단서)가 내 손에 열 장이나 쥐어져 있다.

마음은 허전하고, 

집안 가득한 어머니의 물품을 향해, 이 물건의 주인은 이제 세상에 없다고 이 작은 종이들이 외치고 있다.




아쉽지만, 서럽지만, 공허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 


시편 23편의 말씀을 생각하며, 내 스스로를 추스리며 다시 일어날 시간이다.


힘내자,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짓자!

우리 어머니가 내게 바라는 것은 힘들고, 우울해 하는 내가 아니라

더 밝고, 힘차게, 행복하게 하루하루 잘 이겨내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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